제주살이120일

아이둘과 제주도 120일, #4 제주도 모슬포 대정 오일장

dalbodre555 2020. 7. 21. 00:35

 

 달력에 날짜를 표시해가며 기다리던 모슬포 대정 오일장. 대정 오일장을 자주 가는 이유는 가까워서. 시장이야 다 비슷하겠지만, 모슬포 시장에 가면 꿀떡꿀떡 셀 수 없이 넘어가는 호떡집이 있다. 시장 문 앞에 들어서다 보면 다들 호떡 하나씩 입에 물고, 비닐 봉지에 담아서 가져 나간다. 엄마, 아빠가 제주도 오실 때마다 제일 먼저 찾으시는 곳은 이 곳 호떡집이다. 심지어 아빠가 같이 못 내려오실 때 엄마가 유일하게 육지로 포장해 가는 것이 이 집 호떡이다.

 

 우리 신랑은 음식에 호불호가 강하지 않은 사람인데, 이 집 호떡집 처음 와서 오뎅국물 호호 불며 호떡을 9개나 먹었다. 호떡을 전혀 입에 대지 않던 나도 2~3개 쯤은 오뎅 국물과 함께 거뜬히 먹지만, 먹는 것보다 재미난 건, 호떡 만드는 아주머니의 손놀림이다. 끊임없이 쏟아지는 주문을 받아가며 계산하며 손으로는 쉬지 않고 호떡을 만드시는데, 감탄이 절로 나온다.

 

 호떡을 먹고 속이 좀 느끼해지면 건너편 떡볶이 집으로 가면 된다. 어렸을 때 엄마 손잡고 가던 시장에서 실컷 장 보고 나서 엄마와 함께 먹던 시장 떡볶이, 바로 그 맛이다. 바로 바로 튀겨서 내놓는 오징어 튀김은 세상 말할 것도 없이 바삭하다. 오징어 튀김에 떡볶이에 방금 튀겨 호호 불며 먹는 도넛까지 먹고 나면 한 겨울이어도 춥지가 않다. 그제서야 설렁설렁 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하면 된다. 두툼하기 그지 없는 갈치들도 다듬어 집에 가져가고, 싱싱한 제철 과일들도 골라 보고, 아이들용 내의도 얼마나 저렴하고 질이 좋은지 갈 때마다 하나씩 사 모은 게 한 가득이다. 봄에는 시장 입구에서 파는 시금치, 토마토, 딸기 등 모종들을 사서 텃밭에 심어 열매가 열리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지켜보기도 했다.

 

 사실, 내가 모슬포 대정 시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따로 있다. 갓 튀긴 오징어 튀김, 꿀이 주르륵 흐르는 호떡도 좋지만, 모슬포 시장 뒷문으로 나가자마자 보이는 자그마한 식당 ‘옥돔 식당’, 보말 국수. 결혼 하기 전에, 언니 추천으로 가 보고는 세상에 이렇게 진한 국물이 있을까 해서 한 그릇 먹고 너무 아쉬워 두 번째 그릇을 주문했는데 다 팔렸다고 거절당한 그 국수. 제주도 갈 때마다 들렀지만, 오후 2시만 되도 다 팔렸다고 문을 닫아버려 맘 상하기 일쑤인 그 국수. 큰 아이 낳고 처음 제주도에 갔을 때도, 다음 날 11시 문 열자 마자 찾아가서 먹었던 그 국수. 보말 잔뜩 들어 걸쭉한 그 국수는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을, 바로 그런 국수다. 식당도 허름하고 테이블도 많지 않아 확장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, 몇 년 째 같은 자리 같은 건물에서 시간도 늘리지 않고, 준비된 양이 다 팔리면 문을 닫아 버리는 야속한 그 국수. 안 그래도 먹기 힘든 국수였는데, 이제는 매스컴에 몇 번 방영된 후, 갈 때마다 또 못 먹으면 어쩌나 걱정되는 집이다.

 

 먹을 것들 말고도 모슬포 대정 시장을 갈 때마다 들리는 거센 파도소리도 참 좋다. 매번 가는 금릉이나 협재와는 달리 우렁찬 파도소리가 늘 기분을 들뜨게 한다.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맞는 힘찬 바닷바람. 스카프로 얼굴을 칭칭 둘러 감고서라도 잠시 서서 바라보게 되는 묵직한 바다의 움직임. 사실 그 바다가 아니었다면, 육지의 시장과 뭐가 그리 다를까 싶기도 하다. 떡볶이도, 튀김도, 국수도 평범하지 않게 해 주는 마법은 아마 이 바다였을 지도 모른다. 저 파도소리를 듣고 먹는 어떤 음식이 마냥 평범할 수 있을까?

 

 물론 제주시에 가면 다른 장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다. 서귀포, 함덕, 세화 오일장도 가 보았지만, 북적북적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분위기와 맛집들도 풍성한 그 시장들도 나름 좋았지만 왠지 모를 불편함과 붐비는 인파에 어린 두 아이를 챙기느라 긴장이 되어 있곤 했다. 여행객 기분을 느끼러 한 번씩 들러는 보았지만, 두 번 이상 찾아가지는 않았다. 5일, 10일 만 되면 “호떡 먹으러 가자~” 하고 그 날의 모든 일정은 시장에서부터 당연한 듯 시작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작은 기쁨이었다. 시장에서 장 보는 재미를 알게 해 준 이 오일장의 추억을 아이들도 함께 기억하고 있음이 참 행복하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