본문 바로가기

제주살이120일

제주살이 Best 맛집 1- "수우동"

수우동!

 

이름만 불러도 두근두근 떨림이 시작되는 곳이에요.

 

눈 감고 있어도 메뉴판부터 창틀 색, 일하던 언니 오빠들 얼굴까지 다 세세히 그려지는 곳.

 

제주도에 대한 그리움을 못 참게 만드는 곳 중 하나입니다.

 

우선 수우동에 이렇게 열광하는 건 당연히 맛이 일 번이고,

 

그다음은 창 너머 보이는 돌담과 협재 바다의 파도들입니다.

 

금릉 바다에서 아이들과 실컷 놀고, 

아이들 따뜻한 것 좀 먹이자며 처음 데려갔던 이 곳.

이때만 해도 매스컴을 타기 전이어서 식사시간만 피하면 많이 기다릴 필요는 없었습니다.

 

(물론 이 때도 점심시간이나 주말에는 한 시간 이상 기다림은 필수였다.)

자리를 안내받아 들어가 앉자마자 내가 한 말은,

 

 “이 분위기면 공깃밥만 팔아도 대박 나겠다.”였습니다.

 

앉아만 있어도 제주도에 왔음을 실감 나게 하는 딱 그런 곳이었어요.

 

처음 갔을 때 시킨 메뉴는

우동, 돈까스, 그리고 내가 늘 좋아하는 냉우동.

 

아직 둘째는 이유식 시기였기 때문에

아이스박스에 넣어둔 이유식을 꺼내 데워 주십사 부탁드렸고,

첫째는 짭짤한 우동국물에 물 조금 섞어

몇 젓가락 남기고 한 그릇을 금세 다 먹었습니다.

 

그런데 여기 면발.

면발이 심상치가 않아요.

 

입안에서 탱탱 튕겨 다니는 살아있는 면발.

 

우동집에 냉우동이 있으면 늘 주문을 하는데 여기 냉우동은 차원이 다릅니다.

면발도, 달짭 소스도, 튀겨진 어묵과 계란도, 레몬도

어느 하나 안 어울리는 것 없고

아쉬움이 없는 딱 “와!” 하는 맛, 딱 그 맛! 

 

누가 맛집을 소개해 달라하면 다들 입맛이 달라 반응들이 차이가 있으니 소개하기 소심해지는데,

이 곳은 두 손들고 “여기, 여기!” 숙소랑 멀어도, 돌아 돌아서라도 꼭 가보라고 얘기하는 곳이에요.

 

돈까스는 또 어떠한지.

우동이 맛있다고 해서 간 집인데,

아이들 밥도 좀 먹일 겸 기대 없이 시켜 본 돈까스는

제주도 최고의 돈까스 집이라 감히 말해 봅니다.

 

한 입 먹자마자 어? 소리가 나왔어요! 

여긴 돈까스만 먹으러 와도 되겠는데?

그래서 다음번부터는 갈 때마다 인원 수대로 우동 시키고

 

돈까스는 기본으로 하나 더 시키고 봅니다. 

 

분명히 이쯤 먹으면 느끼해져야 하는데

자꾸만 술술 들어가는 게 틀림없이 이 집만의 비법이 있지 싶어요.

 

이 곳의 숨은 메뉴라고늘 추천하는 메뉴는 튀김 덮밥!

튀김 덮밥! 튀김 덮밥! 튀김 덮밥!!!!!!

 

아이들과 금릉 물놀이를 끝내고 주 2~3회 밥 먹으러 오던 이 곳에서 찾은 메뉴.

 

그 날 따라 밥이 먹고 싶어서 시켜봤는데, 이게 또 내 마음을 살랑거리게 한 거지요.

기름 냄새나는 튀김은 한 입 이상 못 먹는데,

 

여기 튀김은 기름 특유의 느끼한 냄새 대신 일식집에서 만든 것처럼

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튀김이에요.

한 입 아삭 먹고 소스에 살살살 밥을 비벼가며,

그동안 튀김 덮밥을 안 먹은 이 곳에서의 시간들이 어찌나 아쉽던지.

 신랑이 한국에 나왔을 때도 이 곳을 데려왔는데, 기다린 시간만 1시간 30분이었어요.

 

음식을 굳이 기다려가면서 먹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라고 늘 생각하는 신랑도

이 곳 냉우동, 돈까스, 튀김 덮밥을 먹고는 “유명한 이유가 있네.” 라며 맛있게 먹던 곳이에요.

 

안타깝게도(?) 이 곳이 점점 더 유명해지면서

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어요.

 

 

하지만 이 식당은 바로 바닷가를 끼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도 않아요.

(지금은 예약제이기 때문에 많이 안 기다려도 되구요.)

 

마당 밖으로 나가 저 멀리 비양도를 품은 협재 바다를 보다 와도 좋고,

초여름이면 마당에 핀 수국들 틈에서 사진도 찍고 향도 맡아도 좋다.

우리 아이들은 수우동집을 ‘무궁화꽃’ 식당이라고 기억합니다.

 

기다리는 동안 늘 뒷마당에 나가 바다를 보며 ‘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.’ 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

가락국수보다 더 진하게 남아있는가 봅니다.

한참 까르르 웃으며 놀고, 돌담길로 내려가 바다 냄새도 다시 맡다 보면

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.

기다리다 먹은 음식은 더 꿀맛이지요, 당연히.

 

수우동 올 때마다 늘 빠지지 않는 코스는 골목길 산책입니다.

 

한낮에 물놀이를 한참 하고, 이 곳에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

바다품으로 주황빛 노을이 사르르 내려와 앉기 시작하는 시간이에요.

 

협재 쪽으로 몇 걸음 걸어와 바다를 보고 계단에 걸쳐 앉아 한 없이 이 곳 저곳을 둘러봅니다.

밝게 불을 켠 등대, 멀리서 다가 오는 커다란 배들, 한쪽에선 아직도 시끌시끌 놀고 있는 여행객들.

 

반대쪽 돌담길이 늘어진 골목으로 걸으며 고요함 속에

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시간 또한 참 좋습니다.

걷다 보면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,

아이들과 하루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감상에 젖기도 하구요.

 

그 골목길을 다시 데려가도 우리 아이들은 기억을 못 할지도 모릅니다.

 

아니, 분명히 못 하겠지요.

 

그래도 지금 쏟아내고 있는 저 수많은 마법 같은 표현들이

제주에서의 삶을 통한 건 아니었나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.

 

눈에 보이는 무언가를, 그림처럼 선명히 남은 기억들을 남겨주려고 하는 욕심만 버린다면

아이들은 더 자연스럽게 스르르 그 안으로 빠져들더라구요.

 

수우동 먹고 늘 걷던 협재 바닷길