수우동!
이름만 불러도 두근두근 떨림이 시작되는 곳이에요.
눈 감고 있어도 메뉴판부터 창틀 색, 일하던 언니 오빠들 얼굴까지 다 세세히 그려지는 곳.
제주도에 대한 그리움을 못 참게 만드는 곳 중 하나입니다.
우선 수우동에 이렇게 열광하는 건 당연히 맛이 일 번이고,
그다음은 창 너머 보이는 돌담과 협재 바다의 파도들입니다.
금릉 바다에서 아이들과 실컷 놀고,
아이들 따뜻한 것 좀 먹이자며 처음 데려갔던 이 곳.
이때만 해도 매스컴을 타기 전이어서 식사시간만 피하면 많이 기다릴 필요는 없었습니다.
(물론 이 때도 점심시간이나 주말에는 한 시간 이상 기다림은 필수였다.)
자리를 안내받아 들어가 앉자마자 내가 한 말은,
“이 분위기면 공깃밥만 팔아도 대박 나겠다.”였습니다.
앉아만 있어도 제주도에 왔음을 실감 나게 하는 딱 그런 곳이었어요.
처음 갔을 때 시킨 메뉴는
기본 우동, 돈까스, 그리고 내가 늘 좋아하는 냉우동.
아직 둘째는 이유식 시기였기 때문에
아이스박스에 넣어둔 이유식을 꺼내 데워 주십사 부탁드렸고,
첫째는 짭짤한 우동국물에 물 조금 섞어
몇 젓가락 남기고 한 그릇을 금세 다 먹었습니다.
그런데 여기 면발.
면발이 심상치가 않아요.
입안에서 탱탱 튕겨 다니는 살아있는 면발.
우동집에 냉우동이 있으면 늘 주문을 하는데 여기 냉우동은 차원이 다릅니다.
면발도, 달짭 소스도, 튀겨진 어묵과 계란도, 레몬도
어느 하나 안 어울리는 것 없고
아쉬움이 없는 딱 “와!” 하는 맛, 딱 그 맛!
누가 맛집을 소개해 달라하면 다들 입맛이 달라 반응들이 차이가 있으니 소개하기 소심해지는데,
이 곳은 두 손들고 “여기, 여기!” 숙소랑 멀어도, 돌아 돌아서라도 꼭 가보라고 얘기하는 곳이에요.
돈까스는 또 어떠한지.
우동이 맛있다고 해서 간 집인데,
아이들 밥도 좀 먹일 겸 기대 없이 시켜 본 돈까스는
제주도 최고의 돈까스 집이라 감히 말해 봅니다.
한 입 먹자마자 어? 소리가 나왔어요!
여긴 돈까스만 먹으러 와도 되겠는데?
그래서 다음번부터는 갈 때마다 인원 수대로 우동 시키고
돈까스는 기본으로 하나 더 시키고 봅니다.
분명히 이쯤 먹으면 느끼해져야 하는데
자꾸만 술술 들어가는 게 틀림없이 이 집만의 비법이 있지 싶어요.
이 곳의 숨은 메뉴라고늘 추천하는 메뉴는 튀김 덮밥!
튀김 덮밥! 튀김 덮밥! 튀김 덮밥!!!!!!
아이들과 금릉 물놀이를 끝내고 주 2~3회 밥 먹으러 오던 이 곳에서 찾은 메뉴.
그 날 따라 밥이 먹고 싶어서 시켜봤는데, 이게 또 내 마음을 살랑거리게 한 거지요.
기름 냄새나는 튀김은 한 입 이상 못 먹는데,
여기 튀김은 기름 특유의 느끼한 냄새 대신 일식집에서 만든 것처럼
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튀김이에요.
한 입 아삭 먹고 소스에 살살살 밥을 비벼가며,
그동안 튀김 덮밥을 안 먹은 이 곳에서의 시간들이 어찌나 아쉽던지.
신랑이 한국에 나왔을 때도 이 곳을 데려왔는데, 기다린 시간만 1시간 30분이었어요.
음식을 굳이 기다려가면서 먹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라고 늘 생각하는 신랑도
이 곳 냉우동, 돈까스, 튀김 덮밥을 먹고는 “유명한 이유가 있네.” 라며 맛있게 먹던 곳이에요.
안타깝게도(?) 이 곳이 점점 더 유명해지면서
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어요.
하지만 이 식당은 바로 바닷가를 끼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도 않아요.
(지금은 예약제이기 때문에 많이 안 기다려도 되구요.)
마당 밖으로 나가 저 멀리 비양도를 품은 협재 바다를 보다 와도 좋고,
초여름이면 마당에 핀 수국들 틈에서 사진도 찍고 향도 맡아도 좋다.
우리 아이들은 수우동집을 ‘무궁화꽃’ 식당이라고 기억합니다.
기다리는 동안 늘 뒷마당에 나가 바다를 보며 ‘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.’ 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
가락국수보다 더 진하게 남아있는가 봅니다.
한참 까르르 웃으며 놀고, 돌담길로 내려가 바다 냄새도 다시 맡다 보면
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.
기다리다 먹은 음식은 더 꿀맛이지요, 당연히.
수우동 올 때마다 늘 빠지지 않는 코스는 골목길 산책입니다.
한낮에 물놀이를 한참 하고, 이 곳에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
바다품으로 주황빛 노을이 사르르 내려와 앉기 시작하는 시간이에요.
협재 쪽으로 몇 걸음 걸어와 바다를 보고 계단에 걸쳐 앉아 한 없이 이 곳 저곳을 둘러봅니다.
밝게 불을 켠 등대, 멀리서 다가 오는 커다란 배들, 한쪽에선 아직도 시끌시끌 놀고 있는 여행객들.
반대쪽 돌담길이 늘어진 골목으로 걸으며 고요함 속에
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시간 또한 참 좋습니다.
걷다 보면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,
아이들과 하루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감상에 젖기도 하구요.
그 골목길을 다시 데려가도 우리 아이들은 기억을 못 할지도 모릅니다.
아니, 분명히 못 하겠지요.
그래도 지금 쏟아내고 있는 저 수많은 마법 같은 표현들이
제주에서의 삶을 통한 건 아니었나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.
눈에 보이는 무언가를, 그림처럼 선명히 남은 기억들을 남겨주려고 하는 욕심만 버린다면
아이들은 더 자연스럽게 스르르 그 안으로 빠져들더라구요.
'제주살이120일' 카테고리의 다른 글
아이둘과 제주도 120일, #2 떠나기 전의 설렘 (0) | 2020.07.17 |
---|---|
아이둘과 제주도 120일, #1 "엄마, 너무 행복해!" (0) | 2020.07.14 |
제주살이 플리마켓 (꼭 가야 하는데.. 지금 문 연곳이 없다..ㅠㅠㅠ) (0) | 2020.06.25 |
제주살이 120일 with two kids -2 (0) | 2020.06.22 |
제주살이 120일 with two kids -1 (8) | 2020.06.19 |